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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9 작은 꽃이라 불리웠던 뉴욕의 영웅 '피오렐로 라과디아'

 

1930년 어느날.
상점에서 빵을 훔쳐 절도혐의로 기소된 할머니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피고는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처음 입니다."

"그렇다면 왜 훔쳤습니까?"
"일자리도 없고 배식도 끊기고 일주일 넘게 굶은 손자가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네? 아 그, 그건 약속할 수 없습니다."

판사는 잠시 후에 최종 판결을 내렸다.

"피고의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므로 피고 애니 돌로레스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감안하여 판사가 용서해줄 것으로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판결이 너무 가하다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피고는 재판장을 나가면 또 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굶어 죽을 수는 없기 떄문이지요. 그러나 피고가 빵을 훔친 것은 피고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피고가 생존을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뉴욕 시민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판사로서 큰 책임을 느끼는 바 본 판사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는 동시에 이 법정에 있는 시민 여러분들께도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집행관에게 전달했다.
판사의 놀라운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 돈이 모두 57달러 50센트였다.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다.
할머니는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톡특한 판결을 내린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 이야기다.

당시 그는 할머니를 처벌하는 대신 그 고통을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판결을 내렸고 이 사건은 미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판결로 당대 큰 이슈가 되었다.

그 후로도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부정부패와 맞서 싸웠고 시민들의 삶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16년간 인간적인 판사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얼마후 법조계를 떠난 그는 뉴욕 시장에 출마했는데 선거 공약으로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있던 뉴욕시민들은 환호했다.

1930년대 당시 뉴욕은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마피아들이 살인, 매춘, 도박 등 온갖 범죄를 일으키며 도시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시민들은 매일같이 불안과 공포에 떨었고 뉴욕은 당시 48개주 가운데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손꼽혔다.

결국 라과디아는 그 공약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고 시장에 당선되었다.

뉴욕 시장에 당선된 직후 라과디아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성대한 취임식 파티가 아니라 작고 허름한 라디오 부스였다.

 


실제 라과디아는 시장 취임 첫날, 라디오 연설을 통해 마피아들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즉각 행동에 옮겼다.

가장 먼저 부패한 경찰조직을 개편했고 당시 마피아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불법 슬롯머신을 뿌리뽑기 위해 "찾아서 부셔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라과디아는 마피아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특별 검사를 소집했고 더 강경하게 대응하며 당시 마피아 보스였던 '찰스 루치아노'를 매춘법으로 기소해 무려 50년형을 받아냈고 마침내 뉴욕내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켰다. 뉴욕 시민들은 기쁨의 축배를 들며 라과디아를 환영했다.

마피아를 몰아내자 뉴욕의 치안은 안정을 되찾고 훨씬 안전한 도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빈곤했고 뉴욕의 경제적 불황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의 치안을 안정시킨 라과디아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라과디아를 차기 당 지도자로 추대했다.

하지만 라과디아는 자신의 당인 공화당의 정책을 버리고 상대당인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깜짝 발언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러자 공화당내 사람들은 라과디아가 배신자라며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대공황으로 발생된 대규모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했고 상대당이지만 민주당의 뉴딜정책이야 말로 뉴욕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삶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그는 루즈벨트로부터 약 11억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뉴욕의 경제를 회복시켰다.

그후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1933년부터 1945년까지 3번의 연임을 거듭해 뉴욕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그는 시장 임기가 끝난 후 죽을 때까지 뉴욕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뉴욕의 맨하튼에서 13km쯤 떨어진 잭슨 하이츠에 그의 이름을 따서 '라과디아(La Guardia Airport) 공항'이 만들어졌다.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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