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져가는 이나라를 향해

애써 '대한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서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


- - -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 - -

 


1911년

성 베네딕도회 총아빠스(대수도원장)인,
독일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 조선을 찾아왔고,

 

 


그는 4개월간 조선팔도를 여행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400페이지가 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자에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돌아갔는데...

 

 


14년후
다시 조선을 찾아
15,000m 분량의 35mm 필름에
방대한 영상기록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 귀중한 필름은
1970년대말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한 수도원에서
지하실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90년전인 1925년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 삶, 풍습 등이
생생하게 기록 보관되어 있었다.

 

 


베버 신부를 비롯하여 선교사들이
가난과 식민통치 하에 신음하던 이나라를 찾아와
정말로 낮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교육 의료 구휼사업에 헌신했던 그들의 모습.

 

 


독창적인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조선과 조선사람들을 사랑하였고,

 

 


그러면서 이러한 소중한 기록을 남긴
그들의 선각자적인 역사관과 성직자로서의 삶에
다시 한번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귀국길에 오른 그의 짐꾸러미에는

영화 필름뿐 아니라 또 다른 귀중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바로 일본인 골동품 상인에게서 구입한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었다.

 


1920년대 우리의 문화와 산천을 필름에 담고,

겸재의 작품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구입한 것은

나라를 빼앗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문화를 훼손하고 수탈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두차례 조선 방문에서

우리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서는 참담한 심정으로

귀국길에 올랐던 베버 신부는

겸재의 그림을 통해 조선의 산천을 매일 바라보며

나라 잃은 민족의 해방을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독일로 간 겸재의 그림은

그의 두번째 조선 여행기 '한국의 금강산에서'을 통해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최근 미술품 경매업체 크리스티와 소더비 관계자가 수도원으로 찾아와

50억이 넘는 거액을 제시하며,

겸재의 그림을 팔 것을 여러차례 집요하게 요청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한국진출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던

오틸리엔 수도원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재를

이 기회에 차라리 돌려주자고 결정하게 된다.

 


2005년!
벽안의 신부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소중히 가져간

조선과 조선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드디어 떠난지 80년 만에 겸재 화첩에 담겨 돌아오게 되었다.

 

 

1956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돌아가셨다 하는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님을
오늘에 알게 됨을 감사드리면서...

 

http://youtu.be/htJJs2Nqcpo?list=PL7F9968DBD04209D7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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