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0세의 알렉세이 레오노프
인자한 얼굴의 동네 할아버지같은 그에게는 남다른 과거가 있다.

1965년 오늘(3/18일)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구소련의 우주선 보스토크 2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간 그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4.6m의 줄에 의지한 채 약 12분간 우주 공간에 몸을 맡긴다.

이것이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그렇게 힘들어 했던 우주유영인 것이다.

 

 

 

 

 


옛 소련의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로 우주를 유영한지 오늘로 50주년을 맞았다.


우주개발에 있어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미국도 불과 석달후에 우주유영에 성공하게 되지만...
세상은 1등만 기억할 뿐이고...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우주유영 :
 
 
영화 '그래비티' 예고편 :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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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허셜

그는 평생 24개의 교향곡, 7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포함하여 수백 곡을 작곡했다.
바로크 음악에 종교적인 면을 줄이고 오락성을 가미했던 그의 연주회는 매번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허셜의 업적은 엉뚱하게도 다른 분야에서 우리가 기억 해야 한다.

그는 40대에 들어 전문분야였던 음악을 돌연 그만 두고 평소 흥미를 느끼던 천문학 분야에 뛰어든다.

1781년 오늘(3/13일)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허셜은 초록빛의 새로운 별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별이 단지 혜성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별은 2천 년 동안 확고부동했던 태양계의 서열을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다.

인류는 당시까지 토성이 태양계의 마지막 별로 알았는데 토성 바깥쪽에 존재하는 또다른 행성인 '천왕성'을 발견한 것이다.

망원경으로 발견한 최초의 이 행성은 우라누스(Uranus)로 명명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의 하늘 '우라노스'의 영어식 이름이었다. 우라누스는 하늘의 신이니, 한자로는 천왕성(天王星)이었다.

천왕성은 태양으로부터 약 28억 8천만 km 떨어진 곳에서 태양주위를 공전하고 있고, 공전주기는 대략 84년이다.

천왕성의 반지름은 지구보다 약 4배가 조금 넘는데, 천왕성의 자전은 매우 특이하다.
다른 행성과는 전혀 다르게, 자전축이 거의 황도면에 누워 있는 형태로 자전을 한다. 

적외선 관측에 의한 천왕성의 온도는 약 -215도이며 태양계에서 가장 추운 행성으로 기록되게 된다.

천왕성은 13개의 희미한 행성 고리를 지니는데 이는 태양계에서 토성 다음으로 두 번째로 발견된 고리이다.

천왕성의 대기는 태양빛의 적색 파장을 흡수하고 청색과 녹색의 파장 상당량을 반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청록색을 띤다.

천왕성의 위성은 현재까지 27개가 발견되었다. 중요한 5개의 위성으로는 미란다, 아리엘, 움브리엘, 티타니아, 오베론을 들 수 있다 이 5대 위성들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 나오는 요정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보이저 2호만이 천왕성을 탐사했으며, 다른 탐사 계획은 없는 상태이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Voyager) 2호는 약 10년 뒤, 1986년 1월 24일 천왕성으로부터 약 81,500km 지점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에 접근해 많은 사진들을 보내왔다. 이 사진들의 해상도는 지상에서 관측한 것보다 300배 이상 뛰어났고, 수많은 위성과 고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 대기의 구조와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였고, 자기장 측정을 통해 자전주기가 17시간이라는 사실과 10개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였으며 2개의 새로운 고리를 찾았다.

이는 우리 인간이 천왕성의 발견 시점으로부터 약 200년 동안 알아낸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였다.

허셜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최초로 그린 천문학자였다. 그는 수천억 개의 별이 띠 모양으로 모여 있는 별의 집단을 은하로 보고, 우주가 수많은 은하로 이루어졌음을 밝혀냈다.

우주 탐사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허셜의 은하 이론 틀이 유지되고 있다.

윌리엄 허셜의 초상화

허셜이 작곡한 악보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할 때 사용한 망원경(복원)

보이저 2호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천왕성 모습

천왕성의 고리

천왕성의 대표적인 위성

1986년 천왕성에 근접한 보이저 2호

보이저 2호에서 촬영한 천왕성의 다른 모습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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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게다.

이렇게 늦다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 적은 두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 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 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아있는 석사 학위가 아니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이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손석희 앵커 -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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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구 반대편 이야기 하나!!!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지난 1일 후임자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퇴임하였는데...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소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작별인사를 하는 그에게 세계 각국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는 60년대 초부터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했고
1970년 투옥 후 14년간의 감옥생활
군부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사면되어 정계에 투신하여
2010년 대통령 취임했다.

그는 집권 기간중
대통령 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어주고
자신은 33년째 살고있는 우루과이 전통가옥에서 생활했으며,
28년째 폭스바겐 중고차를 타고 다녔고...
대통령 월급 1,300 만원중 90%를 빈민주택기금으로 기부

그가 집권한 후 우루과이는 국민소득 15,000불과 매년 5.5%대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국민 65% 이상의 지지를 받고 퇴임하는 그가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를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한다지만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진짜 가난한 이는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만 하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다.
가진 것이 많지 않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처럼 일할 필요가 없다”

동영상 보기 :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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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음악가가 있다. 
 
초기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했다.
그러나 저렴한 입장료의 경쟁작으로 인한
잇따른 흥행참패로 빚더미에 올랐고,

결국 내졸중마저 찾아왔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음악가는

저예산으로 드라마틱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라토리오였다. 


당시 공연을 보러온 영국 국왕이 기립하고 들었다는...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그의 대표곡 [메시아] 
 
2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성탄절이나 신년에 꼭 한번은 들어보는 음악.

 

 


1685년 오늘(2/23일)은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헨델이 태어난 날이다. 
 
George Frederic Handel - Messiah, Hallelujah :

 
George Frederic Handel - Sarabande :

 
George Frederic Handel -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

 
George Frederic Handel - Water Music :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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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1936년 일본 고베의 ‘모로조프 제과’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초코렛을 선물하자는 판촉행사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1958년 도쿄의 ‘메리 쵸코’라는 양과자점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여성이 남성에게 초코렛을 선물하자'는 판촉을 합니다. 


한편
1968년 소니의 창업자였던 모리타 아키오 씨는 초코렛을 받지 못하는 남성 직원들의 사기저하가 문제가 되자 여직원들에게 발렌타인 데이에 쵸코렛을 주변 남성들에게 선물하자는 캠페인을 유행시키게 됩니다.
이른바 으리 초코렛~^^...

그리고 급기야...
남성들의 지갑을 털기 위하여 '화이트 데이'까지 만드는 만행(?)을 저지러고 맙니다.

몇 년 전부터 일본 젊은이들은 “그 동안 우리가 제과회사의 상술에 너무 휘둘렸다”며 상술로 가득한 2월14일을 즐기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발렌타인 데이 판촉행사 기간에 팔리는 초콜릿이 1년 동안 판매량의 1/3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년전 올린 글인데 ...
기억 나시나요?

오늘은 우리에게는 또다른 의미의 날입니다.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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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당대의 실질적 권력자 서태후에 의해 청나라 황제에 즉위한 선통제 푸이.

 

그러나 이후 그의 삶은 할리우드에서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로 만들 만큼 파란만장하고 기구했다.

 

3살의 나이로 중국의 황제가 되어 7살에 망국의 책임을 지고 자금성에 연금되는 비운의 황제.

 

1934년 일제에 의해 다시 한번 만주국의 황제에 추대되나 이용만 당하고, 일본 패망후 중국에 압송되어 일본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다.

 

1959년 특사로 풀려나 베이징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그리고 푸이는 1967년 암으로 숨을 거뒀다.

 

19012년 오늘(2/12일)은 267년 역사의 청나라 12대 황제 푸이가 퇴위함으로써, 2,000여년 역사의 중국 군주제가 무너진 날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 메인 예고편

 

영화 '마지막 황제' M/V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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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라져가는 이나라를 향해

애써 '대한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서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


- - -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 - -

 


1911년

성 베네딕도회 총아빠스(대수도원장)인,
독일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 조선을 찾아왔고,

 

 


그는 4개월간 조선팔도를 여행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400페이지가 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자에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돌아갔는데...

 

 


14년후
다시 조선을 찾아
15,000m 분량의 35mm 필름에
방대한 영상기록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 귀중한 필름은
1970년대말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한 수도원에서
지하실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90년전인 1925년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 삶, 풍습 등이
생생하게 기록 보관되어 있었다.

 

 


베버 신부를 비롯하여 선교사들이
가난과 식민통치 하에 신음하던 이나라를 찾아와
정말로 낮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교육 의료 구휼사업에 헌신했던 그들의 모습.

 

 


독창적인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조선과 조선사람들을 사랑하였고,

 

 


그러면서 이러한 소중한 기록을 남긴
그들의 선각자적인 역사관과 성직자로서의 삶에
다시 한번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귀국길에 오른 그의 짐꾸러미에는

영화 필름뿐 아니라 또 다른 귀중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바로 일본인 골동품 상인에게서 구입한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었다.

 


1920년대 우리의 문화와 산천을 필름에 담고,

겸재의 작품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구입한 것은

나라를 빼앗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문화를 훼손하고 수탈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두차례 조선 방문에서

우리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서는 참담한 심정으로

귀국길에 올랐던 베버 신부는

겸재의 그림을 통해 조선의 산천을 매일 바라보며

나라 잃은 민족의 해방을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독일로 간 겸재의 그림은

그의 두번째 조선 여행기 '한국의 금강산에서'을 통해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최근 미술품 경매업체 크리스티와 소더비 관계자가 수도원으로 찾아와

50억이 넘는 거액을 제시하며,

겸재의 그림을 팔 것을 여러차례 집요하게 요청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한국진출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던

오틸리엔 수도원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재를

이 기회에 차라리 돌려주자고 결정하게 된다.

 


2005년!
벽안의 신부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소중히 가져간

조선과 조선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드디어 떠난지 80년 만에 겸재 화첩에 담겨 돌아오게 되었다.

 

 

1956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돌아가셨다 하는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님을
오늘에 알게 됨을 감사드리면서...

 

http://youtu.be/htJJs2Nqcpo?list=PL7F9968DBD04209D7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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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은 찰리 시포드.

1952년 피닉스 오픈에 선수로 출전한다.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 전화를 받았고 페어웨이를 걸어가는 동안 욕설을 들어야 했다.

단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

당시 시포드를 비롯한 흑인 선수들은 끊임없이 투쟁했다.
결국 백인으로 한정한 자격 규정이 철폐되고, 1961년이 되어서야 정식 PGA 투어 회원이 된다.



드디어 1967년 흑인 최초로 PGA 투어 우승을 했다,
1984년까지 총 494경기에 참가해 2승을 거뒀고, 51차례나 '탑10'에 진입했다. 

그러나 평생의 소원이었던 마스터스에는 끝내 출전하지 못했다.
마스터스 대회는 1975년이 되어서야 흑인에게 클럽하우스를 개방했고,



그로부터 22년 후인 1997년 '타이거 우즈'가 흑인 최초로 '그린 재킷'을 입게 된다.

2004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시포드.
작년 11월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자유훈장까지 받았다. 골프 선수로서는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세번째였다.





골프계의 '마틴 루터 킹'이라 불릴 만큼 흑인 골퍼의 인권을 위해 힘든 싸움을 했던 '찰리 시 포드'

그가 2월 4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아직도 프로 골프의 세계에서는 흑인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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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삶을 보냈던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비교되는 음악가가 있다.

집안 배경부터 시작해서 혜택 받은 결혼,
그리고 풍요로운 생활,
좋은 벗과의 교우 등은 정녕 행운아 그 자체의 생애였다.

우아한 용모와
세련된 사교성의 일면에는
부유한 천재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왕후들은 다투어 그를 초대했고,
연주회는 도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에게 행복한 생애를 주었더라면 아마 그와 비슷해졌을 것이라는
어느 비평가의 말에서 보듯이, 그가 얼마나 복이 많은 천재였던가를 말하고 있다.

단 한 가지,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그는 단 38년만 살다 간다.

결혼식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음악 '결혼행진곡'이 그가
17살에 만든 작품이다.

그가 바로 독일 출신의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1809년 오늘(2/3일)은 바로 그의 생일이다.

 



Posted by 지상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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